본문 바로가기
일상/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옥중서간

by 연강 2020. 7. 31.
반응형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 책은 교양으로 듣는 글쓰기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추천하신 책 중 하나이다. 저자가 20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쓴 편지들을 모아 만들었다고 간단히 소개를 해주셨다. 책을 읽어보려고 도서관에서 빌려왔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잘 읽히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펼쳐 읽어보면서 이 책의 가치를 깨달았다. 좋은 책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봤는데 읽으면서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살만큼.

 

 

 저자 신영복 교수님은 194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년 20일을 복역하다 1988년 8월 15일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이후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2016년 세상을 떠나셨다. 

 

 

 그를 20년 동안 복역을 하게 만든 통일혁명당 사건은 무엇일까. 1968년 박정희 재임 시절인데 중앙정보부는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등을 중심으로 1964년 3월 만들어진 통일혁명당이 무장봉기, 주요 시설 파괴, 정부 요인 암살 등의 방법으로 정부 전복과 공산정권 수립을 꾀했다."라고 발표했다. 당시 신영복도 158명 검거자 명단에 들어있었다. 중앙정보부가 밝힌 신영복의 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영복(27.육군중위.신영복(27. 육군 중위. 서울상대 졸. 숙대 강사. 육사 교관) ①66년 2월 김질낙에게 포섭 ②학생청년지도책을 맡고 이종태 노인영 박성준 이수인 이영윤 등을 포섭(민족해방전선 조직비서) (경향신문 1968.8.24.) 그는 통혁당이 무엇인지도 몰랐을뿐더러, 통혁당 지도부라고 불리는 김종태나 이문규를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68년 그가 군인으로 있을 당시 핵심인물로 지목되었고 그 후 사형을 선고받았고, 무기수가 되었다. 20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20대의 청년이 40대의 장년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감옥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 만들 책이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한 달에 몇 번 가족에게 쓸 수 있었던 엽서에, 하루 두 장씩 지급되었던 휴지에 글과 작은 삽화를 그렸던 것이다. 책은 1968년부터 1988까지의 글을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책 중간중간 넣어놓은 삽화나 글씨를 보면 한 자 한자 바르게, 정성 들여 적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감동을 가져다준다.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스쳐간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지나간다. 매 편지에서는 부모님이 안녕하시길, 건강하시길 바란다는 문구가 쓰여있는데 마음이 아프다. 감옥에서 보내는 일상들, 책을 읽고 떠올린 생각들,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 삶의 소중함이 그의 글로써 담겨 있는데 잔잔하고도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실 책 표지에도 적힌 글의 일부도 매우 감동적이다. 1985년 8월 계수님께 보낸 편지다. 계수님은 자신의 형제 중 막내의 부인을 의미한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삼십칠 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어떻게 감옥이라는 곳에서도 이렇게 높은 정신적 고양을 이룰 수 있을까.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성품, 인간성이 글에 내포되어 있는데 너무나도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기억에 남는 글은 '청구회 추억'이다. 1966년 봄 서오릉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어린이들과 인연을 약 2년 동안 이어오면서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는 글이었다. 1969년 사형선고를 받고 그 기억을 회상하며 교도소 두루마리 휴지에 볼펜으로 기록한 것이다. 책에 담긴 글 중 분량이 긴 글에 해당하는 데 아이들을 만나고 감옥에 들어가서 그 만남이 끝나기까지가 상세히 적어져 있다. 글을 읽으며 내가 청구회의 어린아이도 되었다가, 저자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너무 순수하고 예쁘고 저자와의 우정도 마음 따뜻해진다. 인사를 하고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마음, 편지를 쓰면서 신나 하는 마음,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 기다리는 마음, 나도 선생님께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는데 못하는 데서 나오는 아쉬움이 눈앞에 선하다. 문화동이라는 곳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이지만 내 머릿속에서 아름답게 그려진다.

 

 

 저자가 아이들을 처음 만나고 말을 걸 때 책의 표현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쓴 부분이 인상 깊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저 서오릉에 놀러 온 무리 중 하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래처럼 그 세계에 들어간 저자는 아이들과 서로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다. 

"만일 '얘, 너 이름이 뭐냐?'라는 첫마디를 던진다면 그들로서는 우선 대답해 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는 불쾌감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뱅글뱅글 돌아가기만 할 뿐 결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대답을 필요로 하는 질문을, 그리고 어린이들이 가장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놀림의 느낌이 전혀 없는 질문을 궁리하여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들로부터 한 묶음의 진달래 꽃을 선물 받았다.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서 가장 밝은 진달래 꽃빛은 항상 이때에 받았던 진달래 꽃빛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군법회의에서 이 '청구회 노래'의 가사를 읽도록 지시받고 '청구회'가 잡지사 '청맥사'를 의식적으로 상정하고 명명한 이름이 아니냐는 '희극적'질문을 '엄숙히'추궁받았다.

 

 

그 작은 엽서는 바쁘고 경황없이 살아온 우리들의 정수리를 찌르는 뼈아픈 일침이면서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보게 하는 자기 성찰의 맑은 거울이었다. 그것은 작은 엽서이기에 앞서 한 인간의 반듯한 초상이었으며 동시에 한 시대의 초상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을 읽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영인본 엽서 서문에서

 

 

 

TMI) 소주 '처음처럼' 은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