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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책

죽여 마땅한 사람들 (The kind worth killing) 피터 스왓슨/ 킬링타임용 스릴러 소설

by 연강 2020.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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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죽여 마땅한 사람들 (The kind worth killing)' /피터 스완슨/ 푸른숲

 

 

 책상에 놓인 책을 엄마가 보고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 또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책 제목은 의아했다. ‘죽여 마땅한’이라는’ 말은 어딘지 모를 불편한, 불쾌한 느낌이 든다. 책 뒷장의 옮긴이의 말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죽어 마땅한’과 ‘죽여 마땅한’의 차이는 무엇일까? ‘deserve to die’가 아닌, 이 책의 원제에도 나오는 ‘worth killing’은 살인자로서의 정체성과 능동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직접 살인을 실행하리라는 의지.

 

 

 ‘죽여’라는 이 한 단어만으로도 다른 느낌을 갖게 하고, 보다 섬뜩하다. 내가 널 죽이는 게 맞아. 내 행위는 정당해라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책을 읽게 된 이유에는 책 제목도 한 몫했지만 피터 스완슨의 작품 재밌어라는 댓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피터 스완슨이 누군지도 모르고 책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어느 누군가가 재밌어라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단순한 인간이다.

 

 

 책에 대한 내용을 아무것도 몰라서 소설인 것도 몰랐다. 책의 표지에 ‘사람이 사람을 살인으로 심판할 수 있는가 우리가 믿어온 선과 악, 인간성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라고’ 쓰여 있길래 다소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는 책이겠거니 했는데 소설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재밌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요즘 동영상을 많이 보고 뭐든 요약된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집중력이 짧아졌다. 책을 읽으면서 풍경이나 인물의 모습을 상상하는 시간이 줄었다. 뭐든 빨리빨리 해내는 게 습관이 돼서 책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읽지 않는다. 책에 흠뻑 빠져서 읽은 적이 언제인가 싶다. 특히 소설의 앞부분은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사람의 흥미를 끌고, 작가의 문장이 어떠한 장면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미리 볼까 하는 생각이 수십 번 드는데 참고 봤다.

 

 

 책을 전개하는 과정은 크게 4명의 인물의 입장에서 서술이 된다. 릴리, 테드, 미란다, 킴볼. 나는 릴리의 챕터를 읽는 게 제일 재밌었다. 아마도 작가가 릴리라는 사람을 특별하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부분만 약간 소개하자면 공항 라운지 바에서 우연히 두 남녀가 마주치게 된다. 술 한잔을 시켜놓고 같은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곧이어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간단히 대화를 나눈다. 어차피 같은 비행기만 탈뿐 서로의 존재는 곧 잊힐 테니까. 남자는 여자에게 일주일 전 아내가 바람피우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그년의 말에 그는 아내를 죽이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라고 말하는 그녀. 솔직히 난 살인이 사람들 말처럼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내를 죽이기로 할까? 그녀는 왜 그렇게 말한 걸까. 

 

 

 책 읽으면서 들었던 잠깐의 생각들을 잠깐 정리해보면...

 남편, 아내, 남자친구, 여자 친구가 불륜을 저질렀다 해서 혹은 나에게 상처를 줬다는 이유 등으로 내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게 정당한 일일까? 결코 아니다.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타인을 죽이는 그 심리가 궁금하기도 하다.

 

 

 살의에 찬 마음은 뭘까? 아직 겪어보지 않은 것 같다. 현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기 때문에 형벌을 내가 그 자에게 집행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그 일을 대신 집행한다. 그러한 형벌이 내가 입은 피해에 상응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자들을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교화를 하는 게 맞을까 교화가 될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속의 한 등장인물처럼 살인은 첫 번째가 힘들지 그다음은 힘들지 않은 걸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고... 내가 한 살인에 대해 내가 했다는 증거가 없고, 나 이외에 아무도 모른다면 그게 없는 일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마지막 그 우물가의 시신은 발견되는 걸까? 묻히는 걸까?

 

 

 

죽여 마땅한 사람들, 킬링타임용으로 좋은 책이다.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소설이 있고 미친 듯이 넘어가는 소설이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다.

                   - 마리끌레르

 

 

 

p48

 나도 그녀를 죽이는 게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옆자리 승객이 갑자기 내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해준 것이다.

 

p54

 당신은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당신이 죽인다 해도 어차피 죽을 사람 조금 일찍 죽이는 것뿐이에요.

 

p57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게 왜 그리 끔찍한 일로 간주되는 걸까? 금세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차지할 테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죽을 것이다. 몇몇은 끔찍하게, 몇몇은 평온하게, 살인을 죄악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겨진 사람들 때문이다. 죽은 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하지만 만약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p383

 시체를 숨기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시체를 숨기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방법은 시체의 진실을 감춰서 실제와 다른 일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p407

나는 계속 생존할 것이다.

 

p421

 나는 내가 죽였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중략) 가슴이 아팠다. 익숙한 감정은 아니지만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한 짓을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다. 난 후회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내가 저지른 살인마다 이유가, 그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가슴이 아픈 까닭은 외로움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내가 아는 사실을 공유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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