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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책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by 연강 2020.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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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자 한다면 서로 다른 단어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 내라고 했던가. ‘선량한’과 ‘차별주의자’의 조합은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사실 어떤 책을 고를 때 그다지 고심하지 않는다. 그 날의 감정에 따라서, 그냥 단순히 책 표지가 감각적이어서, 아는 작가라서, 제목에 이끌려 읽는다. 나랑 안 맞으면 죽기 전 언젠가 읽겠지 하고 책을 덮으면 그만이다. 어쨌든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차별에 대해 다룬다.

 

 

 김지혜 작가는 사회복지와 법을 공부했고,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시고 연구하신다. 이 책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고민에서 출발했다. 바로 토론회에서 작가가 ‘결정 장애’라고 발언한 것에 대한 한 청중의 지적이었다. 이때 작가는 자신이 차별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대부분은 내가 다른 사람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많을뿐더러 우리가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차별까지 우리는 우리가 선량한 시민이라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일뿐이다.

 

 

 책은 총 3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어떻게 차별을 보지 못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만들어지는지, 2부 차별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3부 앞 내용을 가지고 차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로 차별의 대상이 되곤 하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사건을 주요하게 다룬다. 미국의 연구 내용이나 사례, 어떤 개념에 대한 설명과 인용이 많았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난잡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또한 많은 사례를 들어서 이해를 도왔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내가 다수에 포함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정말로 소수의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거다. 사실 머리로는 이해를 한다. 차별은 나쁘다. 해서는 안 돼. 하지만 실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장애인 이동권 관련해서 다룬 사례가 기억난다. 2017년 10월 한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신길역 계단 옆에 설치된 장애인 리프트를 타려다가 계단 아래로 추락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2018년 6월 서울의 지하철 1호선에서 했다. 시위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매 정거장에서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6개 정거장을 가는데 1시간 40분이 걸렸다. 평소보다 5배 이상 걸렸고 시민들은 항의했다.


 당연히 머릿속으로는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6 정거장을 가는데 평소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고 생각하면 안 그래도 지옥철인 지하철 싫은데 그 상황에서 나는 과연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을까.

 

 

p98-99

유머로 던질 말에 정색을 하고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유머와 놀이를 가장한 비하성 표현들은 그렇게 ‘가볍게 만드는 성질’ 때문에 역설적으로 ‘쉽게 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이런 언어 공격은 인간 내면의 아주 본질적인 부분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는 반면, 그 말이 왜 문제인지 설명하기는 너무나 어렵고 설명할 기회의 순간은 짧다. 우리는 대게 말문이 막힌 채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친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다음 기억에 남는 게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덤벼야 할까라는 부분이다. 실제 다른 사람은 웃자고 한 이야기이겠지만 나는, 당사자는 전혀 안 웃긴다. 오히려 불쾌하다. 특히나 상사와 직원과 같은 권력관계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막 쏘아붙이고 싶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도 짧고 마음대로 쏘아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겪을 수 있는, 겪은 내용이지 않았나 싶다. 그럴 때면 나도 웃지 않는 소심한 반항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부분이다.

 

 

 요즘에 인권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은 것 같다. 물론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학생자치, 학생인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논의하곤 했는데, 투표 연령이 낮아져 현 고3의 일부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전에 고3이 투표권을 가지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목소리 높여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막상 투표를 하고 보니 그러한 일은 눈에 띠지 않았다. 또한 우리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걸 보았다. 물론 그 현장 옆에는 반대 시위가 있었지만, 그러한 축제가 열린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초·중·고 많은 곳에서도 인권수업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인권에 대한 강의가 열린다. 인권에 대한 수업을 나 또한 재학 시절에 들었다. 인권을 법과 연계한 강의였는데 과거의 우리 주변에 차별이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어떻게 개선되어 왔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인권을 법이 어떻게 보호하는지 등을 배웠다. 재밌었고 유익한 강의였다. 인권강의는 다들 한 번쯤 들어보면 좋겠다.


 이미 이 책이 10만 부나 팔리고 올해의 책에도 선정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차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의 행동 주변을 살피면 좋을 것 같다.

 

 

p58

다중성을 생각해야 비로소 내가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차별을 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첩된 차별을 겪고 있고, 그래서 차별받는 집단 속에서 더 차별을 받기도 한다. 차별은 두 집단을 비교하는 이분법으로 보이지만, 그 이분법을 여러 차원에서 중첩시켜 입체적으로 보아야 차별의 현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p79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시야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발견할 기회이다. 그 성찰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p166

롤스에 따르면 시민 불복종이란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혁을 가져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긴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를 말한다. 시민 불복종은 일종의 ‘말 걸기’ 행위다. 매우 절실한 행태의, 사안의 긴급함과 중요성이 주목받지 못 하고 이해되지 못할 때, 그래서 통상적인 경로를 통해 효과적으로 의견이 전달되지 않을 때 시민 불복종이 사용된다.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효과가 없을 때, 불복종의 방식으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사안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p197

차별금지법

‘모든’ 차별을 금지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법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논의하였듯이 보편성은 차별을 잘 보이지 않게 만들어 은폐시키기도 한다. 보편적으로 모든 차별을 금지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차별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보이게 만들기 위해 차별금지 사유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p205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간한 상징이며 선언이다. 단지 법의 제정이라는 결과로써가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아니 그전부터 차별과 평등에 대해 논쟁하며 고민한 결실로서 내리는 결단일 것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에 차별해서는 안 되는 것을 길게 나열하는 것에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다. 이것 외에도 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더 추가할 내용도 많고 다 적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 이러한 범주들을 넣는 이유가 뭘까? 바로 위의 이유였다. 명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차별 안 해 정말? 과연?

 

하지만 우리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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