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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책

에픽하이 타블로 소설 '당신의 조각들' pieces of you

by 연강 2020.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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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조각들 타블로 소설집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항상 에픽하이와 타블로의 노래가 있다. 난 그의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로 하여금 누군가를 떠올리고, 사회현상을 직시하고,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에픽하이의 앨범 중에도 '당신의 조각들'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2008년 정규 Love Love Love, Breakdown, One, 낙화, 우산이 수록된 명반, 그곳에 당신의 조각들이 있다. 부모님을 생각하고 만든 것 같았다. 처음 듣는 순간, 시간이 멈추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알고 보니 타블로가 아버지에게 헌사한 노래라고 한다. 

 

 

당신의 조각들은 작아져가는 아버지에 대한 헌사 같은 곡이다. 아버지와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손을 봤다. 옆에 있던 카메라로 아버지의 손을 찍어 나중에 현상을 해봤는데 사진을 보니까 그 낡은 손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아버지의 조각조각들, 다시 말해 눈이나 손이나 입 등 모든 것들은 내가 닮은 것이지 않나. 아버지는 이렇게 고생했는데 내 손으로는 뭘 하고 있나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님을 닮고 그러한 우리의 조각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타블로의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에 대해 써보겠다. 당신의 조각들은 타블로가 20대 때 적은 단편 소설 10개를 엮어 만든 책이다. 안단테, 쉿, 휴식, 쥐, 성냥갑, 승리의 유리잔, 우리들 세상의 벽, 증오범죄, 최후의 일격,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다. 그는 사실 음악을 하기 전 펜을 먼저 잡았었다. 스탠퍼드 대학 창작문예, 영문학과를 나오기도 했다.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이 사람의 글을 더 읽고 싶다'는 거였다. 글이 다소 묵직하고 우울하다. 그러나 그 안에 무엇인가가 있다.

 

그의 20대는 조금 외로웠던 것 같다. 책에 외로움이 묻어있다. 그래서 이상하게 자꾸 꺼내 읽게 된다. 아무래도 타인의 외로움, 슬픔을 눈치챈 내가 그 안에서 같이 공감하고 그로부터 받는 위로가 있는 것 같다. 

 

 

10대의 끄트머리와 20대의 시작 지점에 썼던 글들을 20대를 보내며 정리하는 일은 참 묘하다. 번역을 하고 퇴고를 하면서, 이 글들을 썼던 당시보다는 조금 성숙해진 내가 그때의 나를 이렇게 저렇게 타일러주고 싶기도 했고, 보듬어 안아주고 싶기도 했다. 아름다웠던 만큼 슬펐던, 슬픈 게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던 날들. 그때와 많이도 멀어진 지금, 어떻게 보면 나는 여전히 제자리다. 

 

 

 내가 자주 꺼내 읽는 부분은 안단테라는 이름의 소설이다.(사실 안단테만 자주 꺼내 본다.) 치매에 걸린 피아니스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자라나는 만큼 나의 부모는 그만큼 늙어간다. 그 모습을 자식으로서 보는 것은 힘겹다. 어릴 때에 보던 크나큰 사람은 어디 가고 내 앞에는 작은 사람이 남아있나. 책에 있는 문장은 너무나도 무미건조하다. 그 무미건조함에서 감정이 흔들린다. 치매를 가진 부모를 둔 자식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작가가 이거 보고 슬펐으면, 감동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 아니라 그냥 묵묵히 적어나가는데 그렇다. 아들의 여러 감정이 나타난다. 너무 답답하고 갑갑해서 이 곳만 아니라면 편히 숨 쉴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러나 그곳을 벗어난 어딘가도 편하지 않다. 결국 도망가서 도착한 피아노 연습실에서 미친 듯이 자신을 학대하듯 건반을 치는 마음, 부모에게 저장된 나이만큼 생긴 세월의 고집의 묘사 등 너무 공감이 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인상 깊다.

  "뭐가 들리니?"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비 냄새가 났다. 나는 눈을 떴다. 아버지는 그저 그 질문을 반복할 뿐, 내 대답은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시간의 작고 깊은 틈에 갇혀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려요."

 

사실 아버지와 닭살 돋을 정도로 각별하진 않다. 현재 나 혼자 독립해 살고 있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굉장히 영웅이다. 특별히 아버지가 뭘 해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자체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 모든 것들이 신화적으로 멋있지 않나. 다른 부모님들도 그렇겠지만 아버지는 나이가 드실수록 가족들에게 충분하게 해주지 않았다고 미안해하시며 후회하신다. 나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가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자꾸 자책하시니까 그게 아니라고 증명해드리고 싶어서 글로 얘기하는 거다. 뭘 그렇게 바라시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아버지의 사랑이 충분하거든. 
아버지에 대한 타블로의 묘사

 

 

 그가 낸 소설집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놀랐다. 나에게 타블로라는 사람은 가수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마치 나랑 친했던 친구가, 글을 쓴다고는 상상도 못 했던 친구가, 자신이 쓴 책을 선물해주는 것 같다. 실제로 예전에 친구가 자신의 감정, 생각이 담긴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주로 글을 써서 그런지 현 교육 체제에서 겪는 괴로움이나 자유를 갈망하는 글이었다. 선물 받은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제야 보니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너무 늦게 알아챈 것 같다. 어쩌면 글이라는 것은 '나를 좀 봐주세요'라는 요청 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쓴다는 건 세상과, 사람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글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멋진 일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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