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책

유성호 법의학자의 '죽음'강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by 연강 2020. 8. 11.
반응형

 

 

 


"우리 모두 죽음을 비켜갈 순 없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죽음을 마주 보아야 하는 이유이죠." 

 

 

 나는 이동욱의 tv 토크쇼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를 챙겨보곤 했었다. 다양한 셀럽이 게스트로 나왔고 이동욱 씨와 장도연 씨가 함께 이끌어가는 토크쇼였다. 형식이 참신했었다. 셀럽과 연관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뷰, 시추에이션 토크, flex(자기 자랑) 토크가 있었다. 그중에서 유성호 법의학자가 나온 편을 관심 있게 봤었다. '법의학자'라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직업을 가지고 계셨고, 법의학이라는 분야 자체도 신기했다. 또한 CSI나 국과수에서 하는 일들에는 단순한 흥미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범죄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듣는 것도 무섭기도 하지만 흥미 있는 일이었다. 

 

 

  며칠 전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유성호 교수님의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그 주변에는 '죽음'과 관련된 책이 많이 놓여 있었다. 죽음과 관련된 책은 생각보다 정말 많았고 그 옆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삶, 희망을 소재로 한 책이 있었다.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바라볼 때야 비로소 삶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죽어서야 만날 수 있는 남자, 그는 20년간 1500여 건의 부검을 담당한 법의학자이다. 지금도 매주 월요일에 부검을 진행한다고 한다. 서울대 의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 병원에서 인턴, 전공의를 거쳐 병리전문의를 취득했다. 그 후 법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을 겸임하고 있다. 매일 죽음과 마주하여 개인의 죽음뿐 아니라 사회가 죽음에 미치는 영향, 죽음에 관한 인식 등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라는 이 책은 서가명강(서울대를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실제로 서울대에서 수강 신청하기 매우 어려운 강의 중 하나이다. 그런 강의를 일반인(비 서울대생, 수강신청에 실패한 사람 등)이 접할 수 있도록 글로 쓴 책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2부 우리는 왜 죽는가,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1부에서는 법의학과 죽음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한다. 그리고 법의학으로써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고, 범죄사실을 밝혀낸 사례를 들고 있다.(읽다 보면 인류애를 상실할 수도 있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 2부에서는 생명의 시작에 대한 논쟁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죽음에 대해 더 상세하게 다룬다. 죽음의 변천사, 죽음의 과학적 의미, 죽음의 원인 및 형태, 죽음의 시기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 소개, 연명의료, 조력자살, 존엄사,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마지막 3부에서는 어떻게 내 일생의 마무리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영생에 대한 이야기도 책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서 잠깐 다룬다.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죽음은 삼촌의 죽음이었다.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삶을 떠났다. 그 당시 여행을 하고 있었던 내가 돌아와서야 그 죽음을 가족들은 나에게 알렸었다. 그 당시에 들었던 생각은 한 사람이 죽었음에도 삶은 여전했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한동안 슬픔을 느꼈지만 또다시 자신의 궤도로 돌아왔고, 주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게 나는 조금 슬프게 다가왔다. 그다음에도 살면서 많은 이의 죽음 소식을 들었지만 여전히 나는 무뎌지지 않는 감정을 느끼곤 한다. 

 

 

 나는 평소 죽음, 삶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내가 우울한 감정을 느끼거나, 이 삶에 싫증을 느끼는 등 죽음을 바라고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삶은 더 알차게 살까에 대한 고민이다. 그리고 가족에게 죽음에 대해 언급하곤 한다. 비록 내 나이는 어리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다치게 될 경우에는 연명치료는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연명의료 계획서라는 것에 인지를 하고 있었지만 아직 작성하지는 않았다.) 장례는 수목장이 좋을 것 같고, 화장을 해 달라. 또 화장을 했다면 유골함이 아니라 요즘에 자연 분해되는 천이 있다더라. 거기에 싸서 땅에 묻으면 좋겠다. 뭐 이런 말을 하면 부모님은 무슨 애가 벌써부터 그러냐고 한 소리 듣기는 한다. 바람이 있다면 죽음이 갑자기 닥치지 않고 준비할 시간이 조금이나마 있기를 바란다.    

 

 어느 날 엄마가 다른 분의 장례식에 갔다 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장례식에 가면 그분의 좋은 기억만 들곤 한다고. 분명 그 분과 좋은 기억만 있을 리 없지만 장례식이라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태여 그와의 좋지 않은 기억을 들추어 무엇하겠나. 나의 장례식은 어떤 모습이 될까?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죽음이라는 어쩌면 지극히도 개인적인 일을 사회와 연결한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부분을 볼 때 왜 그러한지,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 사회의 시스템을 고려해서 생각하는 그러한 사고를 좋아한다. 사회가 개인의 죽음에 미친 영향, 개인의 죽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전에 유성호 교수, 이 글의 저자는 아니니만 교수님께서 동반자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 대해서 질문하신 적이 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뿐더러 서로의 합의 하에 자살을 했다고 봤다. 그러나 사실 심각한 생활고로 인해 가족동반자살을 한 사례에서 그 어린아이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있었을까 그들의 부모는 자녀에게 동의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타살이었다. 동반자살이라는 단어 자체는 존재할 수 없는 단어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취지이기도 한, 일반 사람들이 구태여 언급을 하지 않는 '죽음'이라는 것에 생각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한다는 점이 좋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집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전체 사망자의 30~40퍼센트를 차지했고, 집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그런데 지금은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병원에 간다. 왜 그렇게 바뀌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우선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음과 우리의 삶을 별개로 떨어뜨려놓고자 하는 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죽음은 병원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타자화시키고 우리는 죽음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조금 더 죽음으로부터 안전한 삶의 공간에 남아 있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병원이나 장례식장을 이용하게 되었다.  p 147

 죽음을 타자화 시킨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호캉스에 대해 설명하면서 김영하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집에도 우리의 상처가 있는 공간이다. 집이라는 공간에 내가 사랑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것을 다른 공간, 병원에 두어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다. 

 

세상에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다. 죽음의 이유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에 잠재하는 자살자의 준비를 눈치채서 그의 삶의 방향을 돌려세워야 하고 시도를 막아 그의 삶이 다시 새로운 빛으로 가득 차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의무이기도 하다. P 176
중국에서 제작한 <신삼국지>라는 드라마에서는 조조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은 유언으로 맺고 있다. 죽음은 서늘한 여름과 같다. 과거에도 사람들이 나를 오해했고, 현재도 사람들이 나를 잘못 알고 있고, 미래에도 사람들이 아마 나를 잘못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두렵지 않다. P 21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