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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영화 드라마

[영화]디어 에반 핸슨, 위로는 커녕

by 연강 202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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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쓰는 영화 후기입니다. 뮤지컬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디어 에반 핸슨'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의 제작진이 참여했다고 해서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유튜브 광고 영상으로 우연찮게 보고 난 후, OST와 예고 영상에 빠져서 개봉일만 기다렸습니다. 11월 17일 개봉일에 영화를 본 만큼, 영화에 대한 기대가 큰 상태로 봤는데 결과적으로는 실망스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그 이유들을 적어보겠습니다.


예고 영상 만으로는 영화 '원더'를 떠올릴 만큼 한 개인(아이, 청소년)이 고난을 겪고, 성장해나가는 따뜻한 감동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포스터에서 말하듯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순간 넘어져도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순간 더는 서 있기 조차 힘들 때 버티지 못해 무너질 때 우리가 당신을 찾을게요.'라는 메시지가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함께있지 않아도 외로움을 느끼는 우리들에게 와닿기를 바랐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만 남았습니다. 영화의 줄거리, 전개가 허술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 에반 핸슨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민감히 반응하는 등 사회불안증세를 앓고 있습니다. 그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매일 자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Dear Evan Hansen, Today is going to be an amazing day. 디어 에반 핸슨 오늘은 정말 좋은 하루가 될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코너라는 친구와 복도에 부딪히게 되고, 그의 동생 조이가 와서 오빠 대신 사과를 합니다. '미안 오빠가 사이코패스야.' 실제로도 코너는 친한 친구도 없고 성격도 난폭했죠. 핸슨은 조이의 사과의 말에 자신이 오히려 횡설수설합니다. 그리고 돌아와 자신의 횡설수설 모습을 회상하는 에반. 오늘의 일기를 오늘은 좋은 하루가 아니었다. 조이에게 말을 걸고 싶다. 내가 만약 내일 사라진다면 누가 알아줄까? 이런 식으로 고치게 됩니다. 우연히 그 편지를 친하지도 않던 코너가 핸슨의 깁스에 싸인을 해주겠다고 와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화를 냅니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내 여동생을 쫓아다니는 스토커 이런 식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는 코비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코비가 자살하던 당시 디어에반핸슨이라는 핸슨이 쓴 글을 갖고 있었기에 그의 부모는 학교에 찾아와 핸슨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 핸슨의 깁스에서 아들의 이름을 보고 크나큰 오해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오해를 풀고 서로 갈 길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슬퍼하는 코너의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코비와 오렌지 농장에서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이죠. 베스트 프렌드였다고 말이죠. 가족들을 위로하며 없는 일들을 만들어 지어내고 코너의 추모사를 하고, 오렌지 농장을 코너를 기리는 곳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까지 진행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에반 핸슨 스스로 자기가 한 일들이 모두 거짓임을 알리게 됩니다.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엄마에게 자신이 국립공원에서 팔을 다친 건 자신이 나무로 올라가 자살할 생각이었음을 밝히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핸슨의 성장이라고도 보는 걸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사하기라고 하려는 듯 온갖 코너와 관련한 사람들의 SNS를 뒤져 메시지를 보내고 끝내 코너가 병원에 있을 당시 기타를 치며 만들었던 노래 영상을 찾아 가족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한 때 연인관계로까지 발전했던 조이와 오렌지 농장에서 잠깐 만나 영화를 마무리됩니다.


코너가 죽을 때까지 코너의 부모는 코너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자식임에도 왜 그 흔적을 친구라고 여겨지는 애반에게서 강박적으로 찾으려 했는지도 이해가 안 갑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으로 넘어가야 할까요? 그리고 코너가 실제로 왜 죽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서술이 없습니다. 그저 코너에게도 난폭하고 폭력하고 그런 일종의 병리적 현상이 있어서 충동적으로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 어쩌면 가족 간의 관계에서 그랬는지, 어쩌면 개학 첫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에반에 대해서 자기가 무턱대고 찾아가서, 애반 스스로에게 보낸 편지를 오해하고 그게 트리거가 되어 그랬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코너에 대한 죽음이 갑자기 '널 혼자 둬서 미안해'에 대한 어떤 상징이 되어서 그러한 추모의 물결을 일으키게 되었는지도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물론 에반이 추모식에서 부른 노래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좋습니다 감동적이기까지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또한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어떠한 결핍을 보입니다. 에반의 경우 사회불안증을 갖고 있어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지만 계속 어떤 관계들을 갈구합니다.  에반의 엄마는 남편과 떨어져 생계를 책임지고 에반을 돌보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고, 자식의 아프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신경 쓰곤 합니다. 그리고 코너의 가족들 역시 코너의 죽음을 상실을 느끼지만 서로 터놓고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활발하고 누가 봐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알라나 역시 불안에 대한 약을 복용 중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점들을 약간 비춰주고, 그에 대한 해결은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코너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알라나 역시 병을 가지고 있고 약을 먹고 있다는 걸 드러내면 다인 건지?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선의를 가장한 거짓말쟁이 에반을 통해 위로를 건네고, 에반은 자기가 지난 국립공원에서 일할 당시 외로웠음을 엄마에게 털어놓으면 됐던 것인지. 에반은 엄마가 자신의 이 이야기에 대해 들어준 것만으로 지난 시간동안 자신의 엄마가 일을 나가 있으면서 혼자 있었던 시간들에 보상이라도 받는 것인가. 애반의 엄마 역시 자신의 남편이 떠난 것에 대한 상처를 아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치유가 된 건가. 너가 뭘 하든 나는 여기에 이 집에 있을 거라는 말을 상처들의 극복으로 보라는 건가.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에게 자식에 대해 잘 안다고 없는 이야기까지 만들어 선의든 악의든 사기를 치고, 그게 사실은 거짓이었어요. 제가 다 지어냈어요. 죄송해요. 왜냐면 저도 힘들었거든요.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 모두의 이야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뮤지컬은 또 다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영화는 개인적으로 별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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