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p30 외로움을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하니까 그럴 수밖에. 외로워봐야 육친의 따스함을 아는 법인데, 이 사회는 늘 기쁘고 즐겁고 벅찬 상태만 노래하라고 하지. 그게 아니면 분노하고 증오하고 저주해야 하고. 어쨌든 늘 조증의 상태로 지내야만 하니 외로움이 뭔지 고독이 뭔지 알지 못하겠지. 요전번에는 종로의 한 화랑에서 그림을 봤는데, 무슨 제철소인가 어딘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그려놓았더군. 그런데 육중한 철근을 멘 노동자들이 모두 웃고 있더라구.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슬픔을 모르는 인간, 고독할 겨를이 없는 인간, 그게 바로 당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인간형인가봐. 그러니 나도 웃을 수밖에.
p31 이런 상황이라면 결국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시바이(연극, 속임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게 개조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 시바이를 할 수 있다면 남고, 못한다면 떠나라. 결국 남은 자들은 모두 시바이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이런 세상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는 거지.
p32
"그러게. 나는 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을까?" 혼잣말처럼 기행이 말했다. 그건 어쩌면 불행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언제나 불행에 끌렸다. 기행을 매혹시킨 불행이란 흥성하고 눈부셨던 시절, 그가 사랑한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었다.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
p38 인생의 질문이란 대답하지 않으면 그만인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대답해야 했다. 어쩔 수 없어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었다. 세상에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러므로 그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설사 그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일지라도.
p53 당은 생각하고 문학은 받아 쓴다는 것. 그러자면 쓰는 동안에는 생각하지 말아야만 했는데, 기행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p69 솜눈이 쏟아져 순식간에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던 날, 그는 눈을 뒤집어쓴 채 비틀거리며 얼어붙은 길을 걸어왔다.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처럼 두 팔을 흔들고 있었다.
다시 상허가 “바쁘지 않으면 내 이야기 좀 들어보겠나?”라고 말했다. 기행은 대답을 망설였다. 당시에는 그와 만나기만 해도 사상을 의심받던 시절이었다. 마치 단 한 번의 접촉만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여기듯이. 그러는 동안에도 눈은 그의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신발 위에 내려 쌓였다. 그는 그 거리에서 곧 지워질 것처럼 보였다.
옥심이 기행에게 자신이 베껴 쓴 노트를 보여주는 장면
p81 시대의 눈보라 앞에 시는 그저 나약한 촛불에 지나지 않는다. 눈보라는 산문이며, 산문은 교시하는 것이다. 당과 수령의 말은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산문이다. 준엄하고 매섭고 치밀하다. 하지만 시는 말하지 않는다. 시의 할 일은 눈보라 속에서도 그 불꽃을 피워 올리는 데까지다. 잠시나마 타오르는 불꽃을 통해 시의 언어는 먼 미래의 독자에게 옮겨붙는다.
p85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상허의 말처럼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볼 뿐 거기에 뭔가를 더 덧붙이지 않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p89 상허가 기행에게 해준 송전에서의 이야기. 바닷가에서 해산물이 지겨워 이웃집 할머니에게 암탉 한 마리를 잡아달라며 돈을 줬는데 한참을 안 와서 찾아가보니 자신이 키우던 닭을 차마 죽이지 못해서 울고있는 할머니의 모습 돈은 받았으되 기르던 닭을 찌르지는 못하는 처지. 차마 아무것도 못하는 처지.
“그런 게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짓는 죄와 벌이지.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받은 뒤에야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
p95
아빠는 늘 우리 남매들에게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생명의 법칙은 그렇지가 않다고, 그러니 생명의 힘, 인간의 힘을 믿으라고. 그 힘은 살려는 힘, 살리려는 힘이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대신에 저는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를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기에 우리는 중앙아사아의 황야에 버려지게 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됐기에 소련군과 미군은 식민지로 고통받았던 땅을 분할 점령했던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됐기에 우리 민족은 서로를 죽이게 됐을까? 집으로 돌아온 아빠에게 제가 물었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됐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요? 그랬더니 아빠는 힘없는 목소리로, 빵이 식을세라 모포에 감싼 채 당나귀에 싣고 온 카자흐 여인들을 잊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 모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건 그런 인민들의 힘이라며.
p112 간판에는 ‘평화’라는 글자 옆에 나뭇잎을 입에 문 비둘기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눈(雪) 빛으로 주위가 환해서인지 비둘기의 하얀색 몸과 빨간색 발, 초록색 나뭇잎이 또렷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기행은 보자마자 그게 올리브 잎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 올리브 잎은 노아의 방주가 곧 가게 될 세상, 아직 오지 않은 세상에서 저 혼자 먼저 온 것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한가운데에 저런 그림을 그려놓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p164
나는 1924년에 세상에 태어났고, 그 세상에는 늘 나보다 먼저 죽는 것들이 있었어요. 내게 전쟁이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는 일이었어요. 전쟁은 인류가 행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일이지만, 그 대가는 절대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나요?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회복을 노래할 수 있나요? 전 죽음에, 전쟁에, 상처에 책임감을 느껴요.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p172 그러니 시대에 좌절할지언정 사람을 미워하는 말라고. 운명에 불행해지고 병들더라도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라고.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다정한 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있다면 행동해야지. 야심 많은 현의 목소리도 들렸다. 마음이 있다면 행동해야지. 야심 많은 현의 목소리도 들렸다. 비록 다가갈 때 인간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제우스가 불행과 병에게서 말하는 재주를 빼앗았다고 할지라도. 그리하여 언어를 모르는 불행과 병 앞에서 시인의 문장이 속수무책이라고 할지라도. 앞의 세대의 실패를 반복하는 인간이란 폐병으로 죽어가는 아비를 바라보면서도 한 가지 표정도 짓지 못하는 딸과 같은 처지라고 할지라도. 그럴지라도.
p175 교수대 앞에선 체코의 공산주의자 율리우스 푸치크 『교수대 앞에서의 말』
그 뒤로도 기행은 몇 번 더 불시에 체포되어 심문받았다. 당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때까지 그는 작아지고 또 작아져야만 했다. 그런 순간마다 그는 먼저 그 책의 마지막 구절을 마음 깊이 품었다. ‘현실 속에는 관객이 없다. 마지막 막이 오른다. 사람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사랑했다. 깨어 있어 주기를!’!’
p189 이 날짜만 그대로 두고 책에 실린 자음과 모음을 해체해 다시 조립한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누가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행은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언어의 세계를 떠날 수 없었다. 평생 혼자서 사랑하고 몰두했던 자신만의 그 세계를.
작가의 말
그토록 강요받던 찬양시를 마침내 쓰는 마음과, 그뒤 삼십여 년에 걸친 기나긴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옛말과 흑백사진과 이적표현의 미로를 헤메고 다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이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동갑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저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기행에게는 덕원신학교 학생들의 연주를 들려주고 삼수로 쫓겨간 늙은 기행에게는 상주의 초등학생이 쓴 동시를 읽게 했을 뿐, 그러므로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북한에서 보냈던 그의 삶은 어떠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한 번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앞으로 찾아서 읽게 될 것 같다. 그런데 한 번 읽고 나의 감상을 글로는 아직 다 못 적겠다. (아무래도 머리 속에 둥둥 떠다니는 감상은 글로 다듬는 게 빨리는 안 되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스탈린 거리와 점점 지워지는 소설가 챕터이다. 여기서 점점 지워지는 소설가는 상허를 말한다. 해방 뒤 일가족을 이끌고 평양에 온 상허는 사상을 의심받고 있어 사람들이 다 꺼리는 눈치다. 기행(백석) 역시 같은 글 쓰는 사람이지만 상허를 거리에서 만났을때 국숫집에서 술 한잔 하자는 그의 말에 시간이 없으니 여기서(거리에서) 말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한다. 기행의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상허는 거리에서 말을 한다. 그러나 그 거리는 솜 눈이 쏟아지는 날이고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고 있는 날이었다. 상허의 머리에도 어깨에도 신발 에도 그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눈이라는 것을 통해서 상허가 지워지고 있음을 표현한 것 같았다. 국가의 체제 아래에서 개인은 너무나도 미미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동료라고 볼 수 있는 그 상허와 말 한마니 선뜻 건넬 수 없게 한다. 이젠 그 국숫집조차 없어지게 되어 다시는 상허와 기행이 언젠가 국숫집에서 마주앉아 술 한 잔 하는 날이 올까.
그리고 사람들은 기쁠 때보다 우울할 때 보통 일기를 많이 쓴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시대 자체가 우울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시인이 시를 쓰지 않고 어떻게 버틴다는 말인가. 사회주의체제 아래, 현실의 강고함과 그에비해 너무나도 작은 기행이라는 사람의 무력감까지 잘 드러난 책인 것 같다.
'일상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0) | 2021.12.30 |
---|---|
고양이1,2 베르나르 베르베르 (4) | 2020.08.17 |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논어 에세이 (4) | 2020.08.16 |
밀리의 서재 소설 '스노우' 정용준 (0) | 2020.08.15 |
작별 한강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中) (2) | 2020.08.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