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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책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논어 에세이

by 연강 2020.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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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책의 저자 김영민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하버드대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브린모어대 교수를 지냈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 이력도 있다. 그의 첫 저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이 있다. 그가 써오던 칼럼들을 모아서 만든 책으로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사회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볼 수 있었다.(그가 칼럼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사실을 김영민 교수는 알까?) 역사시간에 탈춤이 양반의 모습을 비꼬고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면서 풍자와 해학이라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을 이 책에서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보고 작가의 글솜씨에 반해서 김영민 교수가 쓴 책이라고 한다면 '일단 다 읽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근사한 제목과 매치가 잘 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논어'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가 준비하는 논어 프로젝트의 첫 번째로 논어의 주제를 소개하는 책이다. 논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공자, 유교, 고리타분. 그러나 작가의 필력 덕인지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즐겁게 책을 읽었다.  

 

 

 작가는 서문의 제목을 매니페스토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매니페스토(Manifesto)란 '과거의 행적을 설명하고, 미래 행동의 동기를 밝히는 공적인 선언'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사실 서문을 읽고 놀랐다. 오랜 기간 동안 어떠한 것을 애정을 갖고 연구를 하면 그에 따라 내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문에서 저자는 말한다. '동양'의 고전 읽기를 만병통치약으로 팔지 말라. 논어나 고전들을 다른 사람들이 권할 때에 이 책이 너무나도 대단하고 이 책을 읽고 이해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며 나에게도 읽고 깨달음을 얻으라고 한다. 막상 읽으면 이해가 안 되는 게 너무나 많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의 지식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함에 왠지 우울해지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다르다.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가 고전을, 논어를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한다. 고전은 변치 않는 근본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제공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 문제에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나은 통찰과 자극을 주기에 유의미하다. 또한 논어를, 과거의 텍스트를 공부하는 사람은 '죽은 것을, 죽었기에 사랑하는 지적 네크로필리아들에게 그들 나름대로 지켜야 할 사랑의 규약이 있다'라고 말한다.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콘텍스트를 보아야 하며, 고전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논어라는 것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자세마저 친절하게 알려준다. 

 

 

 책은 서문과 1부 침묵의 함성을 들어라. 2부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仁正欲禮權習敬知 개인의 덕성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3부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점에서(省孝無爲威事再現敎學 공동체에 대한 내용이 있다.) 4부 성급한 혐오와 애호를 넘어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중간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를 넣어놓으면서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작가가 매우 친절히 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례를 들어 설명해준다.


그중 기억에 남는 글이 송편 이야기이다. 관행을 따르되, 그 관행의 틀 안에서 침묵하거나 변화를 꾀하며 에둘러 표현함에도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는 말을 설명하고자 하는 비유였다. 꿀송편, 깨송편이 극단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관행을 인정하고 우회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는 온건 개혁파가 송편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콩송편에 대한 명예훼손을 자제하고 침묵한다. 그리고 송편에 고기를 넣자고 말한다.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파장의 크다. 송편과 만두의 구분이 희미해져 송편이라는 범주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논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이야기들을 재밌게 풀어나간다. 

 

 

 이 책의 특징으로는 많은, 다양한 인용들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우리 생활 속 사건, 영화, 만화, 저명인의 말 등등 정말 다양하다. 분야도 다양하다. 그런 인용 사례들이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계속 이어져나가도록 만든다. 또한 공자를 다루는 다른 책들에서는 공자의 덕성이 어마어마하게 높아 애초에 그가 일반인이 아닌 것처럼 묘사하곤 한다. 그럴수록 일반 독자는 다가가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물론 공자가 덕이 있긴 하나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도 욕망을 가지는 존재였고, 물론 실패도 했다고 말한다. 그 점이 좋다. 

 

 

 공자의 에피소드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맹자」 '고자장'에 따르면 공자는 노나라 사구 직책을 맡고 있다가 느닷없이 직장을 관두고 떠났다는 내용이 있다. 제사가 끝났는데도 자신에게 제사 고기가 이르지 않자 쓰고 있던 면류관도 벗지 않은 채 노나라를 떠났다고 한다. 공자가 자신이 떠나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 침묵했으므로,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었고 공자가 고기 때문에 떠났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글쓴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공자는 예를 중시했는데 제사의 자리에서 고기가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 상황을 본 공자는 제사의 예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개탄했다는 것이다. 또한 면류관을 벗지 않고 가버리는 행위도 예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공자가 예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를 지키지 않으면서 떠났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자신의 조국인 노나라를 떠난 것은 면류관을 벗지 않고 떠난 자신의 작은 죄를 구실 삼아 떠난 것이라고 본다. 당시 조국 노나라는 날로 수렁에 빠지고 있었고, 개혁에 대한 전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조국을 혹독히 비판하고 싶지만 그것은 차마 못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계기 없이 떠난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조국에 누를 끼치지 않고 고기가 이르지 않았음을 이유로 떠난 것이다. 비록 자신에게 무성한 소문이 생겼지만 얼마나 사려 깊은 일인가.

 

 

 아마도 논어에 대한 흥미를 붙이고자 한다면 이만한 책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재밌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앞으로 나오는 논어 프로젝트를 찾아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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