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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전시·공연

베르나르 뷔페와 그의 뮤즈 아나벨

by 연강 2020.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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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뷔페 전시

 

 베르나르 뷔페는 나에게 친숙하지 않은 화가였다. 지난 2019년 한가람미술관에서 한국에서는 처음 그의 전시가 열렸다. 이 글에서는 그의 삶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베르나르 뷔페는 비닐봉지를 이용해 질식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다. 그가 자살한 이유는 파킨슨병에 걸려 몸이 굳어가면서 그림을 그리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롭게 식사를 하고 그런 선택을 했다. 그에게 그림은 생의 전부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생전에 8,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었다.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나의 느낌은 이러했다. 어두웠고, 기괴했고 한편으로 무섭기도 했다. 특히나 어린 시절의 그림이 더 그랬다. 그에게 정신병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신병이 없었을뿐더러 주변 사람들은 그가 매우 착했다고 말한다. 그는 초기에 구상화를 많이 그렸다. 그림 속을 살펴보면 잔에는 물이나 술 같은 게 비어있고 과일들은 말라비틀어져 있다. 또한 그려진 사람들을 보면 말라비틀어져 지금의 현대인으로서 본다면 기아라고 할 만큼 마른 모습의 인간이 그려져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 무렵이었다. 음식은 배급받아 먹었고, 그마저도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렸다. 그 당시의 시대를 본다면 베르나르 뷔페는 있는 그대로를 그린 것이다. 베르나르 뷔페를 '20세기의 증인'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런 배경을 몰랐던 나는 그의 그림에서 20세기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느낀 것이다.

 

 

 난 그의 그림이 슬프기도 했다. 아픔, 고독, 외로움, 슬픔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실제로 그림 뒤 배경을 물감을 긁어 자신의 아픔을 드러냈다. 그에게 아픔이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많은 죽음을 경험한 것과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것이었다. 뷔페의 삶 전반에 걸쳐 죽음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닌다. 자신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은 장례식에도 오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어머니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뷔페의 그림실력을 알아채서 뇌종양으로 죽기 전까지 일주일에 한 번 루브르 박물관에 데려갔다. 그도 어머니를 무척 좋아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45년 모두가 전쟁의 끝을 기뻐했지만, 베르나르 뷔페는 45년 자신의 엄마의 죽음을 겪게 된다. 그 후, 그는 방 속에만 틀어박혀서 그림만 그린다. 그런 그에게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이겨낼 방법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만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아나벨과 그 이 사진의 포인트는 저 뒤에 할머니 모습

 

 다행히 그의 그림실력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 후, 그의 그림엔 여러 물감을 사용할 수 있었고 다양한 색깔이 보이기 시작한다. 번 돈으로 그는 성을 사고 롤스로이스를 산다. 성을 산 이유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어릴 적 놀던 곳에서 잘사는 애들이 성에 살아서 그게 부러워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롤스로이드를 산 이유는 단순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운전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아나벨'이라는 그의 뮤즈를 만나게 된다. 아나벨을 만난 후부터는 그의 슬픔과 고통이 좀 덜어진 듯 보인다. 그는 실제로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했다. 100km를 아나벨을 보기 위해 매일 같이 갔다.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라는 존재에 대해 눈길이 가는 것 같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내게 영감을 주고 그 영감으로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게 뭘까. 베르나르 뷔페의 뮤즈인 아나벨은 글을 잘 써서 베르나르 뷔페가 전시를 하면 전시에 대한 글을 써주곤 했다. 2019 전시에서도 아나벨의 글을 볼 수 있었다. 

 

 

브르뉴의 해변 그의 바다는 줄곧 잔잔했지만 이 바다는 너무나도 거칠다

 

 그러나 곧 파리 예술계에서는 그를 따돌리기 시작한다. 예술계의 흐름이 추상계로 넘어갔는데 왜 계속해서 구상화를 그리냐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미술 그림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추상적이니 추상화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그에게 예술적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그는 파킨슨병이 걸리고서는 죽기 전까지 그림을 그린다. 그가 죽기 전에 그린 그림들에서는 굳어버린 손을 사용하는 흔적들이 보인다. 그의 날카로운 이름이 무뎌졌고 그의 직선과 붓의 터치도 달라진다. 그는 그의 죽음을 직감한 듯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과 가까이 있었지만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 걸 느끼고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겠다는 생각에 도달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브르뉴의 해변》을 보면 알 수 있다. 휘몰아치는 폭풍과 어두운 분위기 속 날아가는 새들, 파도에 잠드는 배까지 그림을 보면 슬프기도 하지만 위태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본 아나벨은 어떠했을까. 그림을 본 그녀는 날카로운 것들을 다 버렸다고 했지만 그는 작업실에서 죽음을 택한다. 그러나 뷔페는 죽음을 절망이나 부정적 이미지만으로 보지도 않았다. 해골에 장기를 그리고 소생하는 것들을 그렸다.

 

 

 

죽음 속에서도 심장을 그려넣은 그 

 

 

 

우리에게는 수많은 어제와 하나뿐인 오늘이 있다그러나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그래서 묻게 된다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요? 모르겠어요. 아마도 광대일 것 같아요라고 답한 그. 그가 말한 광대란 무엇일까.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것이었을까. 오늘날, 나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피카소가 시기하고 앤디 워홀이 사랑한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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